2022.11.19 내가 쓰는 재료가 화방에서 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책임을 진다. 내 손에서도 낯선 재료라는 것을 기억하고, 내 손을 떠난 이후에도 안전해야 한다는 것을 연습한다. 기존의 문법에서 벗어난 재료로 작업실이 실험실이 된 것에 대해 책임지고 있다. 크랙이 있는 부분이 왜 더 단단한지에 대해, 그림의 무게를 줄일 수 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는 것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만큼 설명하려다 설명충이 되고 있다. 작가 사후 50년 이상 문제가 없도록 작업하는 것이 작가의 양심이라 하시던 교수님의 말씀을 기억한다. 그 말의 무게에 비추어서 50년을 살아보지도 못한 내가 “문제는 없을 거예요.”라고 단정할 수는 없으니, 작품을 대하는 나의 태도를 설명하는 방법밖에 없어 정말 싫어하는 설명벌레가 되고 있다. 작품을 구매하고 싶은 마음에 가볍게 던진 질문이거나, 본인의 관리 소홀이 원인인지 묻는 DM(다이렉트 메세지)에 이메일 주소를 여쭤보고 이렇게 답장을 보낸다. 매번 새롭게 쓰는 것은 아니고, 이미 써놓은 양식에서 조금 더하거나 빼며 보내드리는 내용이니, 설명충은 맞으나 극혐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을 전하는 바이다.
“안녕하세요, 2022년 이전 작품을 기준으로 더 눈에 보이는 크랙이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크랙이 더 커지거나, 크랙을 원인으로 작품이 손상되는 일은 없습니다. 설명을 더 하면, 크랙은 시멘트와 아크릴 물감의 무게 차가 원인이고 물감의 양을 줄이면 생기지 않습니다. 대신 강도가 약해집니다. 순수한 시멘트는 생각보다 강하지 않은데 아크릴수지가 본드 역할을 하며 강해집니다. 저 역시 크랙을 볼 때 고민하지만 그것은 자연스럽게 둘 것인가 가릴 것인가 하는 심미적 고민이지 내구성에 대한 불안함은 아닙니다. 제 그림이 캔버스 작품보다 무게가 많이 나가는 것은 사실입니다. 시멘트의 무게가 아니라, 사실은 판넬의 무게입니다. 제 그림의 무게는 60%의 판넬, 20%의 아크릴 물감, 20%의 시멘트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마띠에르가 많은 작업이기에 나무가 계절에 따라 수축 팽창하며 틀어지는 것을 방지하려고 나무 판넬을 가볍게 만들지 않고 있습니다. 무게와 비용을 더해서 이미 캔버스보다 무거운 기존의 나무 판넬에 구조를 추가하여 제작하고 있고, 100호 이상의 판넬에는 알루미늄틀이 더 들어갑니다. 그래도 저 혼자 들고 옮기며 작업할 수 있는 무게이니 너무 걱정하실 정도는 아닙니다. 작품의 내구성에 관한 부분은 제가 예민할수록 안도하실 것 같아 설명을 줄이지 않고 말씀드렸습니다. 긴 글에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최혜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