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10
<파리의 어느 마을 묘지에 앉아, 베르그손과 나눈 대화>
베르그손의 『웃음 Le Rire, (1900)』을 기반으로.
멀리서 종이 한 번 울리고, 묘지의 그림자가 바람에 길게 흔들린다. 나무 사이로 햇빛이 부서져 내려, 오래된 비석에 얼룩처럼 번진다. 그 맞은편으로 짙은 밤색 나무 의자에 앉은 두 사람이 들릴 듯 말 듯 작게 대화를 나눈다.
“그래서, 자네는 자네 자신이 아니라 색과 형태 그 자체를 위해 본다는 거지? 실재하는 내적 생명을 느낄 수 있다는 건가?”
“무언가 감각할 수 있는 게 있는데 그게 그것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어요. 원초적이고 본질적인 에너지가 폭발하는 가능성을 느껴요. 스스로 드러나게 하고 싶어요.”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색과 형태를 더 사랑하고 있어요. 그러면 더 투명하게 볼 수 있거든요. 살아가며 왜곡된 상으로 맺히기 전에, 호흡의 리듬을 먼저 느끼려면 더 사랑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래. 지속의 시간 속에서는 모든 것이 서로 스며드니까. 예술가는 구분하지 말고, 그 속에 들어가 함께 호흡하면 돼.”
“제 시간 속에서 어떤 것을 느끼세요?”
“이제 자네의 엘랑비탈élán vital이 이전보다 더 많은 대상 안에서 진동하고 있는 것을 느낀다네. 비록 자네의 시간 안에서만의 일이라고 할 수 없지. 이 시대의 진동이야. 자네는 늘 그것을 운명적이라고 표현하더군.”
“그렇게 표현하면 지금 이 순간이 고단해도 결국엔 해낼 거라는 느낌이 들거든요.”
“자네의 시간은 실재적이어서 좋아. 모든 순간을 함께 살게 하는 방식으로 선택하거든.”
“그래서 제가 선생님을 좋아하고 여기까지 따라 온 것이 아닙니까.”
“책 좀 더 읽게, 혜지. 언제까지 나만 따라다닐 텐가.”
다시 한 번 맑은 종소리가 울리고, 두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 걷는다. 말없이 걷는 두 사람의 발끝에서 각자 다른 리듬의 흙 소리가 난다. 그 기분 좋은 리듬이 종소리와 교차되어 변주되는 동안, 두 사람은 묘지와 또 다음 묘지 사이를 지난다. 과거와 현재가 연속되는 흐름 안에서, 두 사람은 미래의 어느 날을 약속하며 헤어진다.